본문 바로가기

기술과 투자

이제 더 '아는척' 을 해야 할 때

(본 글은 7월 29일 서울신문에 기제된 글의 원문입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는 "How to start a start-up" 이라는 수업이 있다. 미국의 대표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Y-Combinator 가 수업을 총괄하고 성공한 기업가들과 경험 많은 투자자들이 지혜와 노하우를 전수하는 수업이다. 미국 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어 권도균 이니시스 창업자의 주도하에 한글로 번역까지 되었다.


 이 수업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화제가 된 이유는 일단 강의자들의 면면이 화려했기 때문이다. 수업을 총괄하는 Y-Combinator는 숙소 공유 서비스 Airbnb, 개인 클라우드 서비스 Dropbox 등 800여개의 스타트업을 인큐배이팅하였고 이들의 기업가치의 총 합이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중심 축이다. 뿐만 아니라 페이팔 창업자이자 페이스북의 초기 투자자인 피터 틸, 링크드인의 창업자 리드 호프먼, 인스타그램에 투자한 벤처캐피탈 안드레센호로비츠의 마크 안드레센과 벤 호로비츠 등 실리콘밸리의 전설들이 강의자로 총 출동하였다. 개별 강의의 수준도 매우 높았는데 하루에 한 시간도 내기 어려울 것 같은 거물들이 전부 직접 강의를 준비하고 진행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HP 와 인텔로부터 시작된 실리콘밸리의 혁신의 발상지로서의 역사는 깊고도 넓다. 이러한 혁신 기업을 운영하는 노하우와 지혜 역시 지속적으로 공유되고 축적되어 왔다. 아마도 이것은 개인의 생각을 내세우고 이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장려하는 미국의 문화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이 덕분에 우리는 실리콘밸리의 시작을 알린 빌 휼렛과 데이빗 패커드의 창고 창업 스토리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애플컴퓨터의 역사와 세콰이어캐피탈의 전설적인 투자 스토리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졌다. Y-Combinator의 창업자인 폴 그레이엄의 블로그에는 스타트업과 관련된 수백개의 글이 올라와있는데 하나하나가 읽어볼 만 한 명문이며 최근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피터 틸의 저서 '제로 투 원' 은 스타트업 경영과 투자에 대한 하나의 이론서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다. 이외에도 실리콘밸리의 많은 창업자들과 벤처 투자자들은 개인 블로그와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공유하며 토론을 통해 이를 발전시키고 있다.


 한국의 스타트업 역사도 이제 중견급이다. 이 기원은 네이버와 넥슨을 한참 앞질러 메디슨 등이 창업된 80년대 중반까지로 올라간다. 하지만 태동 후 3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스타트업 생태계 차원의 지식과 경험의 축적은 미약한 수준이라 안타깝다. 어디서에도 경영적 관점에서 이들의 역사와 전략이 정리된 자료를 찾기는 어렵다. 창업자는 어떠한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가? 성장은 어떻게 이루어내야 하는가? 기업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내야 하는가? 와 같은 스타트업 성공을 위해 고민해야 할 핵심 질문들에 대한 깊이 있는 한글 자료를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스타트업에 대해 공유되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은 사실 실리콘밸리에서 건너온 것이며 한국적 상황에서 탄생한 지식들은 아니다. 아마도 이는 아직 우리 생태계의 지식과 지혜의 축적 수준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주장을 내세우고 공유하는 것을 어색해하는 한국적 문화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정부의 지원과 민간 차원의 노력으로 인해 이제 우리 스타트업 생태계의 자금규모와 지원책의 수준은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개선되었다. 이제 양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질적인 부분의 성장도 고민 할 때이다. 이를 위해, 생태계의 다양한 이슈들을 함께 토론하며 모두의 지혜로 발전시키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필자만 해도 쿠팡의 성공적인 펀드레이징의 비결이 궁금하고 카카오의 설립부터 있었던 전략적 판단의 근거와 우수한 인재를 대거 불러 모을 수 있었던 기업 문화의 핵심이 궁금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 벤처 생태계의 큰 축인 제조 기반 벤처기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인터넷 기업들과는 무엇이 다른지도 궁금하다. 다행히도 몇몇 선배 창업가들과 벤처투자자들에 의해 이러한 공유와 토론을 위한 움직임이 이전보다 활발해지고 있다. 앞으로 업계 모두의 경험과 지혜가 생태계 내에서 더욱 활발하게 공유되고 토론과 비판을 통해 더 나은 형태로 발전하여 스타트업 생태계의 지적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기를 기대 해 본다.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1507/e2015072820535848120.htm


Written by Jason Hyunjong Wi


Principal at Softbank Vent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