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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경영

대학생활,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아보자

얼마 전 대학교 후배들과 맥주 한 잔을 했다. 취업을 준비중이 친구들이었는데, 아쉽게도 연전 연패 중이었다. 거절당한다는 건 누구에게도 그다지 즐거운 경험이 아닐진데, 오랜 기간동안 목표로 삼고 준비해왔던 회사들에서 너무나 허무하게 고배를 마신 후배들을 보니 안쓰러웠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을 때, 두 친구 모두 "일단 올해 아무데나 가겠다" 라고 하길래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일단 어디건 가야하지 않겠어요?. 이제 4학년인데, 학교도 충분히 오래 다녔고, 이제 여기가 제가 있을곳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라고 했다


게으른것도 문제지만, 급한것도 문제다.


빨리빨리 하면 좋은거 아니냐고? 물론 역량이나 심리적 측면에서 사회 생활에 뛰어들 수 있는 확고한 준비가 되어있다면 빨리 사회 생활을 경험해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고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어느정도의 답이 있어야 되는데 주위에 후배들 상당수가 이게 없이 그저 마음만 급하다. 특히 의욕적인 친구들일수록 더욱 이러한 함정에 빠지는 것 같다.

발달심리학의 주요 이론중 하나로 '에릭슨의 발달이론' 이란게 있다. 쉽게 설명하면 인간의 인생은 8 개의 과업으로 이루어져 있고 앞 단계의 과업을 달성하지 못하면 그 다음 단계의 발달을 성취하기 어렵다는 이론이다. 이 중 대학생활에 해당하는 연령대에서 달성해야 하는 과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5단계 자아정체감 대 역할 혼돈 (청소년기 12~ 18)

이시기에는 긍정적인 자아 정체감을 형성해야 한다.....이시기에 청소년은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확인받고 확신을 가지고 싶어한다. 이때 적절한 성적 정체감의 발달과 직업에 대한 탐색 및 선택은 정체감 발달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불행한 경험이나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정체감 발달에 실패하게 되면 정체성 혼미에 빠지게 되고,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 것인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의 수렁에 빠져 무력감, 혼란감, 허무감을 겪게 된다

6단계 친밀감 대 고립감. (성인초기)

이 시기에는 공적인 성인으로서의 생활이 처음으로 시작되며, 성취해야 할 과업은 친밀감이다. 이시기의 성인은 정력적으로 일하며, 다른 사람과 더불어 성적, 사회적 친밀감을 형성 해 나간다. 그런데 자신이 하는 일이나 타인과 진정한 친밀감을 형성 해 나가려면,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가에 대한 확고한 느낌, 즉 자아 정체감이 발달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아 정체감이 제대로 발달되어 있지 않으면 공허감이나 소외감을 느끼기 쉬운데 이런 사람들은 대개 자아도취에 빠져서 공식적이고 피상적인 인간관계만을 추구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진정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겉돈다

출처: 이보연 아동, 가족 심리 상담 센터

많은 학생들이 아직 직업에 대해 결정할 심리적 성숙이 안되어있는데 급하게 움직이려다 보니 불안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바쁘긴 한데, 진정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답은 없는 경우가 많다. 컨설팅 회사에 입사하기 준비하고 있다는 많은 학생들이 "왜 컨설팅에 가고싶은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쉬는 기간동안 평소 하고싶었던걸 해보라는 충고에 대해서는 "뭐 딱히 하고싶은건 없어요" 라고 대답한다. 자신의 기본적인 취향, 취미, 관심이 전혀 발달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상당수다. 특히,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을 다니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친구들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내가 '기다리고', '고민하며', '하고싶은걸 해봐라' 라고 늘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사실 이런 고민들은 중, 고등학교때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친구들과 이를 강요하는 교육 현실에서 이러한 고민이 이루어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조금 더 여유있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대학시절에라도 이러한 고민과 활동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요즘과 같이 경쟁적인 취업 환경에서, 한시라도 먼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에서는 이마저도 이루어지기 어려운것이 사실이다.

3학년 2학기를 마친 겨울방학이었다. 갓 제대 후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나를 지배하던 시절, 슬슬 취업에 대한 압박도 다가오고, 친구들은 여러가지 시험에 합격하고 있었을 때.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었다. "이번 겨울 방학때는 '해야하는 것'은 하지 말고 '하고싶은 것' 만 하자" 고 결심하고 그대로 행한 적이 있었다. 보고싶은 책도 보고, 기타도 치고, 사람들도 만나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세달이 지나갔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 세 가지

(1) 몇 달 쯤 아무것도 안하고 놀아도 내 신변에는 아무 일 없구나

(2) '좋아하는 것'을 아는것도 연습이 필요하고 어렵구나

(3) 여유가 있어야 새로운 것들이 보이는구나

 

때때로 이러한 뇌 구조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놀다보면 또 께달음이 있다




앞으로 큰 조직 보다는 오직 나의 실력과 역량만으로 승부해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자 라는 인생의 큰 방향성도 이때 결정했고, 그 후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남은 대학 생활을 하며 미래에 대한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들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의 글을 읽고 만약 공감가는 부분이 있다면, 대학생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게 있다. 3개월만 '정말 하고싶은 것' 만 하고 살아보라는 것이다. 여행이 될 수도 있고, 공부가 될 수도 있고, 집에서 잠자는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건 상관 없으니 주위의 시선과 기준을 모두 잊고 '마음의 소리' 를 듣고 그대로 행해보자. 친구들도 잠시 잊고, 주위의 시선도 잠시 잊고 온전히 나를 풀어놓아보자. 처음엔 아마 물가에 내놓은 애 마냥, 내마음이 어디로 갈지 나도 몰라 아마 불안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냥 나자신을 내비둬 보자. 3달동안 열심히 놀다 보면, 오히려 주관있고 단단한 자기 자신으로 변해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Written by Hyunjong Wi
전 McKinsey & Company Consultant, 현 Softbank Ventures 책임 심사역.  Twitter: @Jasonwi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