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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up 경영

어느 벤처기업의 이야기

저는 사실 첫 사회 경험을 Start up에서 했습니다. 2001년 당시 학교생활에 그다지 재미를 못 느끼던 저는 아직 보드게임이 한국에 소개되기 전에 우연히 알게된 보드게임 회사에서 일했었는데요 그 후 약 7개월 동안 회사는 7개의 매장을 가진 프랜차이즈로 성장했고 보드게임은 전국적인 유행이 되었었죠. 이제 다시 Start up의 세계로 돌아와 그 때를 생각해 보니 새롭게 께닫는 점이 참 많습니다.

시작

회사는 평소 게임을 즐겨하시던 사장님과 사장님의 선 후배, 친구들이 모여  2001년에 시작했습니다. 당시 10평 정도 되는 작은 카페로 시작을 했었는데, 자주 친구들과 이곳을 방문하여 게임을 즐기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를 법인화하여 사업을 확대할거고 이를 위해 직원을 좀 뽑을것이라는 말을 듣고 합류하게 되었지요

합류하게 된 첫 날, 3일 밤에 걸쳐 게임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 아르바이트 학생으로 합류한 두 분의 게임 '오덕'(죄송합니다만 이보다 더 적합한 단어가 없네요. 정말 밥먹고 보드게임만 하시던 두 분이셨습니다^^;;) 분과 매장에 있는 약 30여개 게임의 규칙에 대해 밤새도록 교육을 받았습니다. 회사의 '게임 연구 팀장' 이라는 직책을 가진 분이 저를 가르쳐 주셨었는데 게임에 대해 매우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던 분이셔서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게임의 규칙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라는 지론 하에 엄청 빡시게 교육받었습니다.

 

 제가 당시 가장 좋아하던 게임 중 하나인 Torres. 
성을 짓고 말을 움직여 이를 점령하는 상당한 전략성이 요구되는 게임


성장

회사는 거짓말처럼 급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 라는 보드게임의 Value proposition은 소비자들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이었습니다. 회사는 신촌, 대학로, 강남 등으로 매장을 확장했고 새로 오픈하는 매장마다 손님들로 북적댔고, 직원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날밤을 새기 일쑤였습니다

당시 저는 신촌과 대학로 매장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맡았었는데요, 말이 관리 감독이지 게임 설명, 매장 청소, 야간조 근무, 길거리 홍보 홍보 등 그냥 닥치는대로 다 했습니다. 학교에 좌판 벌여놓고 시연회를 하기도 하고, 야간조로 근무하다가 취객과 시비가 붙어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모두의 이러한 노력 속에 회사는 급성장했고 가장 컸던 신촌 매장은 오픈한지 6개월도 안되 일 매출 100만원을 돌파하였습니다

경쟁

우리 회사가 점점 인기를 얻자 슬슬 경쟁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주력 매장이던 신촌점 근처에만 4~5개의 경쟁자들이 등장했고 다른 지역에서도 매장이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매장들이 우리와 가장 큰 차이점은 '게임수가 적고'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게임을 잘 모른다' 라는 점이었는데요, 게임 카페 사업 자체가 변동비 측면에서 워낙 고비용 구조이다 보니 최대한 Lean한 모델을 가져가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때문에 우리 회사에서는 긴장을 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회사들을 조금 무시하는 경향이 생겼었는데요 '그들은 그냥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고, 우리는 보드게임 문화를 올바르게 알리고 진짜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라는 식으로 크게 신경쓰지 않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따라서  우리 회사는, 다양한 새로운 게임의 공급과 게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속적으로 내세웠고 이는 게임 구매 비용과 직원 교육 비용에 부담으로 다가와 매장은 타업체에 비해 고비용 구조로 운용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Axies & Allies, 게임을 마치는데만 4시간 정도가 걸리던 하드코어 게임

결말

심화되는 경쟁 상황에 대응하여 사장님은 본격 카페 사업 확대 6개월만에 보드게임 퍼블리싱 사업을 핵심 사업으로 육성하기로 결심합니다. 시장 수요는 커지고, 카페의 경쟁은 심화되니 Backward integration을 해서 수익성을 확보하려는 계산이었지요. 그러나 당시 Nexon도 보드게임 유통 진출을 선언하였으며  보드게임 컨퍼런스마다 수많은 한국 회사가 퍼블리싱을 위해 참여하는 등 시장 규모에 걸맞지 않는 과잉 경쟁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게임에 대해 잘 아는 우리가 더 좋은 게임을 찾아내고 유통해낼 수 있다는 생각하에 지속적으로 보드게임 문화 창조를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보드게임 협회'를 구성하고 각종 대회 개최 및 언론 노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보드게임이 해외에서는 교육 목적으로도 많이 쓰인다는 것에 착안하여 유아 교육 시장 등에 대한 진출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보드게임 수요는 급감하였고 과당 경쟁으로 인해 수익성도 나빠졌습니다. 회사에서는 약 30여개의 보드게임을 유통하였지만 매출은 연 10억원을 밑돌았고 마진도 좋지 않았습니다. 2005년이 되자 회사를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고 곧 문을 닫게 되고 말았습니다. 

고객을 가르치는것은 정말 어렵다 

왜 이런 결론이 나고 말았을까요? 결과론 적인 이야기입니다만 결국 이 모든것은 한 가지 오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고객에 대한 오판 입니다.


회사 운영의 핵심 가설은 '시장을 창조해야 한다' 였고  이로인해 회사의 핵심 역량은 '좋은 게임의 발굴,이해,교육'에 집중되었습니다. 지속적으로 해외 퍼블리셔들과 접촉하며 새로운 게임을 수입하고 연구하였으며 새로운 게임은 반드시 고객들에게 추천하고 설명했습니다. 게임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직원들에게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과정은 하루하루가 정말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 습니다.

그러나 사실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이러한 복잡한 게임들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회사에 있는 대부분의 게임들은 Utilization이 매우 낮았고, '카탄', '할리갈리' 등과 같은 비교적 단순한 게임들만 인기가 있었습니다. 왜 그러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 성공한 대박 게임들의 공통 성공 요소인 '금전적/비금전적 성취감'을 보드게임이 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보드게임이 근본적으로 한국문화에 적합하지 않다라는 주장도 해볼 수 있는데요 이는 다음 기회에 한번 다루어 보겠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보드게임 문화의 창조'라는 회사의 근본 철학은 시장에 새롭게 적응하는데 방해 요소로 작용하였습니다. 쉬운 파티게임들만 소개하고, 잘나가는 게임만 대량 유통해서 돈을 버는 일은 게임을 너무나 사랑하는 몇몇 직원들에게는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다 보니 유통사업과 카페사업 모두 수익율이 낮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보드게임 카페 사업 자체가 PC방 등에 비해 인건비, 게임 구매비 등 고정비용이 더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다가 이들보다 더욱 고비용 구조였던 우리 회사의 경우는 더욱 심했지요. 유통 역시 수요가 확인되지 않은 게임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유통하려다 보니 수익성이 낮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엠티에서 할리갈리를 즐기는 모습
                                                                                 고객들이 원하는건 그냥 이런거였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왜 보드게임을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선행되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게임이 재미있으면 사람들이 좋아한다' 라는 단순한 명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어떤 재미 요소를 좋아하는가? 게임의 배경과 과정인가? 승부인가? 아니면 대화와 친목인가?' 라는 근본적인 고찰을 일찍부터 집중적으로 해왔다면 소비자 행태에 대해 더 근본적으로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교육시키려 하기 보다는 원하는것을 파악하고 제공하는 것이 언제나 더 쉬운 선택입니다.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고객이 좋아하느냐?' 인 것이죠 

또 한가지는 '유연성 확보를 위한 장치'들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은 계획된 방향대로 절대 운영될 수 없고 시장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자기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유연성이 요구되는데 회사 인력들의 게임에 대한 애정이 변화에 방해요소로 나타났던 것이 이러한 유연함을 저해한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DNA가 근본적으로 다른 사업은 분리하는것이 맞습니다. 멀티브랜드화를 한다던가 매니아 및 게임을 진짜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Flagship 매장 운영 등을 한번 생각 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물론 당시에는 진정 최선을 다했고 최선이라고 믿어지는 선택을 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업에 대한 꿈과 비전'이라는 긍정적인 힘이 '고객이 최우선'이라는 진리에 우선하게 되는 순간 실패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는 것 만은 꼭 짚고 넘어가고 싶네요. 결국 끊임없이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만이 답이 아닌가 싶습니다.

Written by Hyunjong Wi
전 McKinsey & Company Consultant, 현 Softbank Ventures 책임 심사역.  Twitter: @Jasonwi51